정명석 총재 월남전과 석막교회 건축 이야기

정명석 총재가 여자와 결혼 안 한 이유

 

 

그나마도 나를 감동시키지 않았다면
석막교회 짓지도 못했어요.

어떻게 지어? 누가 돈이 있어야지?

내가 월남 갔다와서 피눈물 나게

예수님과 함께 벌어온 것
날마다 새벽예배 갔다오면 예수님께서
녹음기 팔라고 TV 팔라고
나는 그것 때문에 일하고 다녀와서

그것 쳐다보고

“와 텔레비젼 있다 녹음기 있다”

틀지는 못했죠. 전기가 안들어오니까.

맨날 그렇게 즐거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기어코 나에게 이야기를 하시는거여.

그래서 내가 못 들은체 했어요.
녹음기 팔어 빨리 교회지어야지

텔레비전 팔어 빨리 교회지어야지
너와 나의 집이 없잖아.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딴 사람한테 하라 하시라고

논 팔아라 하시라고

나는 거기다가
예수님의 설교 잘하는 사람들 말씀 녹음해서

내가 듣고서 훌륭하게 클려고 하는데
왜 그거를 팔라고 그러시냐고

계속 그랬어요.

아이참 그 이야기 좀 그만하시라고
나중에 가서는

녹음기 안봐야지. 텔레비전 안봐야지

구경 안해야지.

그걸 구경하니까 자꾸 그러시니까

그래서 구경 안하기로 했어요

꼭 덮어놓고
(한번은) 계속은 나를 안쳐다보실테니까.

예수님이 계속 보고계시지는 않을테니까.

이렇게 바쁘실때 나한테 오시겠어?

또 살짝 (덮어놓은 것)들춰보고
언제 전기 들어오지?

전기 들어오게 기도를 하려니까

예수님께서 또 알게 되는거야.
그래서 이런것은 내가 해야지.

진산에서 끌어와야지.
친구들한테 이야기했더니

전기가 삐삐선 같은 것으로

연결시켜서 한다고 했더니

전기가 가다가 소모된다고

내가 주기는 준다..
(진산)으로 이사나와라

어떻게 이사 나오냐고..
친구들 집에서 하루종일 틀었어요.

친구들이 팔아라고 했는데 안판다고..
결국 예수님께서 그거 나둬봐야 녹슬어버려.
음식도 안 먹으면 썩어 똥 된다

그거 녹슬어서 안돼.
쓰다 말다 쓰다 말다 해서 안돼.
아예 안썼으면 모를까.
녹슬고 부식이 돼.

나중에 내가 좋은 것 사줄테니까.
내가 월남가서 이 나이 먹을 때까지

그거 하나 겨우 사다 주시고

다시 40대 50대 쯤 사주실꺼냐고?

아니라고 싫다고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이
그러면 너 나 사랑하느냐?

사랑하는데요?

사랑한다고. 아 사랑하지 않냐고?
(나와) 같이 쓰면 되지 않겠냐?
그러다가 결국적으로 다 팔았어요.
녹음기 팔고 다 팔아서 석막교회 짓는데 주고

월남에서 갖고 온것 가지고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야 이거 너가 사온 것 있잖아?

너 이것 못 갖고 오는 것인데

사오게 되었잖아
확 뒤집어서 갖고오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내가 훈장 탄 공적으로 갖고오게 된 거에요.
한국 들어오기 3일 전에

기적으로 사오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돈을 부쳤어요.

군표를 돈으로 바꾸고
(한국 들어가기) 3일전에 연대에서 내려온거에요.

공적자만 갖고 갈 수 있다

텔레비전이나 큰 물건들, 100불 넘는 것들

그 때 100불이면 그렇게 컸어요.

요새 100불은 그냥 식사 하잖아요

그 때는 엄청나게 큰 덩어리로 본거에요.

지금 텔레비젼 몇 백만원 씩 하는 것에 비교해보면 되죠
나를 평소에 안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녹음기 샀다고 자랑만 하고
그 사람이 공적이 없다고 훈장을 못 타서

팔고 가야하는데 팔려고 하니까 금방 안팔려요

누가 100불 140불이 있어야지

한국에 갈 사람들은 다 환표 해버렸는데..

한국으로 전쟁끝나서 귀국하는 사람들은 바꿨어요.

군표를 달러로 바꿨어요.

나만 안바꾸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한국 가려고 하니까

녹음기, 텔레비전을 판다는 소문이 났어요
내가 얼마냐고 하니까?

제 값 다 받으려고 해서

나는 천천히 있다 가니까

더 기다렸다가 좋은 것 산다고 하니까
자기가 싸게 해준다고 하는거야

140불짜리를 120불에, 100불에 팔아버리고 그랬어요.

그래서 내가 샀어요.

그 사람이 속이 짠하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다 예수님 한거에요.

내가 한 것이 없어요. 하여튼.
나중에 가서는

(예수님이) 죽음도 내가 해결해 주지 않았냐?

죽었으면 끝났잖아
그래서 나중에 가서 마음을 돌려서 그렇게 하겠다고

교인들이 교회 지을라고 하는데

몸만 갖고서는 안되는거야.

돈이 있어야지 짓지
싹 팔아서 뭉칫돈 갖다 놓고서

헌금하고서 시작했어요.
교회를 지었어요.
하나님께 떳떳하게 교회 지어드리고

마지막 봉사 해드리고

나와서 복음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과 같이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모든 것을 써야 합니다.

 

이 영상은 정명석 총재의  2004년도 12월 1일 새벽말씀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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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 (2009) – 정명석 총재 작사 작곡 찬양

정명석 총재 찬양 천지창조 여자 작사 작곡 실체

 

 

천지창조 (2009) – 정명석 총재 작사 작곡 찬양

 
태초 태초 태초에
하나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하나님 찬란한 그 빛 보고 기뻐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오니 이는 첫째날이라

둘째 둘째 둘째 날에
하나님 말씀으로 하늘을 창조하셨다
물이 있으라 하시매 물이 있었고
하나님 물과 하늘 보시고 기뻐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오니 이는 둘째 날이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오니
이는 셋째 날이라

넷째 넷째 넷째 날에
하나님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다
밤 낮 계절과 낮과 해를 이루게 하셨고
하나님 해달별을 보시고 기뻐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오니 이는 넷째 날이라

다섯째 다섯째 다섯째 날에
하나님 땅과바다 생물들을 창조하셨다
생물들아 종류대로 있으라 하시매 있었고
하나님 땅물의 생물 보시고 좋아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오니 이는 다섯째 날이라

여섯째 날에
하나님이 땅 물에 동물들을 창조하시고
자기 형상대로 남자 여자를 창조하셨다
너희는 만물을 주관하고 다스려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다

일곱째 일곱째 일곱째 날에
하나님 천지창조를 마치셨도다
거룩하고 복되게 하시며 안식하셨고
창조하신 천지를 보시고 기뻐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오니 이는 일곱째 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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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총재 소개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총재 소개 전문)

아래 글은 기독교복음선교회 공식홈페이지(http://cgm.or.kr)에 게재된 정명석 총재의 소개 글 입니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정명석 총재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1945년.
정명석 선생은 그해 3월,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의 첩첩산중 월명동에서, 부모슬하 6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지독스런 가난을 겪었다.
변변한 땅이 없어 농사를 지어도 거둘 곡식이 적었다.
멀건 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게 다반사였고 낮에는 칡뿌리를 캐러 산으로 다녔다.
초등학생 시절 점심시간이면 학교운동장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가혹한 현실이 거듭되면서 선생은 십대 초반부터 인생고민에 휩싸였다.‘하나님은 왜 인생을 창조하셨을까?’

 

 

 

 

성자주님의 신부되어 사랑했다

정명석 총재 산기도15살부터 산 기도를 했다. 힘겨운 삶이 깨우쳐 준 인생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낮에는 부모를 도와 농사일을, 밤이면 대둔산과 폐광에 들어가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며 기도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태11:28-30) 이 말씀을 묵상하던 나날, 성자주님이 선생 앞에 나타났다. 기절 할 듯 기뻤다.
주님은 “인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게 배워라” 하셨다.
그때부터 더욱 기도에 전념하며 주님께 성경을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다.
선생은 성자주님만을 신랑으로 삼고 사랑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한 신부의 극진한 사랑으로 사랑했다.
어떤 역경에도 주님을 먼저 불렀고 자신을 비워 그의 말씀에 순종했다.
 

 

선생의 선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라

여름에 시작한 입산기도는 겨울이 지날 무렵 끝나기도 했다.
몇 날 며칠을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기도하기 일쑤였다.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의 한(恨)을 깨닫고 흘린 눈물은 일주일이 넘게 쉬지 않고 흘려도 그치질 않았다.
1966년, 백마부대 일원으로 베트남전에 3년 여간 참전했다.
선생은 성경을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며 틈만 나면 읽었고, 하늘의 음성과 묵시를 기록했다.

수십 번의 극적인 죽음의 찰나에서 주님의 보호로 기적적으로 살았다.
전쟁의 비극적 참상을 보고 겪으면서 생명의 귀함을 절절히 깨달았다.
귀국 후에도 수도생활은 연속됐다. 40일 금식기도와 70일의 절식기도를 했다. 천 번을 넘게 읽은 성경들은 너널 너덜 해졌다. 몸서리치는 추위와 더위, 잠 못 자는 고통과 배고픔, 외로움을 견디며 선생은 성경의 비밀과 진리를 연속 배워나갔다. 눈물과 고생이 앞을 가려도 주님을 열렬히 사랑했기에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위로할 수 있었다. 설한풍 생화송의, 기나긴 20여 년의 수도생활이었다.

그리고 성자는 선생에게 영계의 곳곳을 보여주었다. 천국과 지옥도 셀 수 없이 다녔다. 인간이 자기 영혼에 대해 모르고 영원한 세계를 몰라 허탄한 삶을 사는 걸 깨닫고 선생은 가슴을 치며 개탄했다. 주님은 “너는 내게 배우고 선생의 선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라”고 당부하셨다.

 

나의 유일한 스승은 성자였다

정명석총재와 예수님남녀노소, 시골 도시 할 것 없이 복음을 전했다. 어느 해는 전도한 사람을 세어보니 만여 명이 넘었다. 주님과 함께 발이 부르트도록 생명을 구원하면서 하나님의 말 못할 슬픈 심정과 눈물 그리고 한(限)을 더욱 깊이 체감했다.
1978년 6월 1일,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상경했다. 이때부터 주님께 배운 말씀들을 엮어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선생은 말한다. “나의 절대신 오직 한 분 성자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사랑하니 그로 나타나 가르쳐주었다.
그분만을 신랑으로 모시며 마음과 뜻과 목숨 바쳐 사랑했고, 성자의 첫 신부가 되었다. 그래서 이 길만을 달려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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